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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자 취재수첩

오늘 중딩 딸과 함께 봉하마을 다녀왔습니다

레몬박기자 2009. 5. 25. 21:32



 

어제 오후 예배 마치고 우리 가족 모두 봉하마을을 다녀올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식에 지금 출발하면 아예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몰린다고 해서 다음 날 출발하기로 하고 하루를 기다렸습니다. 제 생각에 점심되기 전에 도착하면 사람들도 별로 없어 조금 여유있게 문상하고 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제 블로그 글을 본 큰 딸이 자기도 꼭 데려가 달라고 하네요. 선생님께 허락 맡으라 하니 그 선생님 흔쾌히 허락하며, 자기가 할 것도 같이 해달라고 부탁하였답니다. (이미 이 학교 학생회 임원단은 오전에 방문하여 분향을 마쳤다고 하네요.) 딸은 같은 반 급우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채 오전 수업만 하고 조퇴를 하고 저와 함께 봉하마을로 향했습니다.

 



 

서김해 톨게이트를 지나 국도를 따라 10분 쯤 오니 봉하마을이네요.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습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 50분 거리에 있더군요. 예전에 봉하마을 방문할 계획을 몇 번 미룬 것이 이리 후회가 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조문객들은 봉하마을로 차량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경찰들이 교통정리하며, 인근에 있는 진영공설운동장으로 안내했습니다. 더운 날 경찰들 참 수고가 많더군요. 진영공설운동장(김해청소년수련관과 같이 붙어 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 대기하고 있는 대형버스에 탑승하여 봉하마을로 가도록 해두었더군요. 그런데 월요일 오후 2시인데도 사람들이 엄청 많더군요. 다 저와 같은 생각으로 왔는지.. 제 앞에 저와 연배인 분이 계셔서 물어보니 회사 점심시간 살짝 빠져나왔다고 하더군요. 약 20분정도 줄을 서니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고, 10분쯤 들어가니 봉하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차량을 통제한 이유를 들어가 보니 알 수 있겠더군요. 이미 엄청난 사람들과 차량이 들어와 주변 도로를 빼곡히 메우고 있었고, 버스가 아니라 걸어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연인끼리, 아기를 업고, 가족단위로, 같은 동네분들이 모여서 등등 오신 분들의 모습도 너무나 다양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1km정도 걸으면 대통령 사저 바로 옆에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고,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환화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방명록에 서명을 한 후 조문객 행렬에 줄을 서 기다렸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나누어 준 국화 한송이를 들고, 20분정도 기다리니 차례가 돌아오더군요. 그제도 어제도 많이 울었기에 더이상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저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흘러나네요. 제 옆에서는 호리호리한 체격의 젊은 남자분이 “바보가 바보들에게” 라는 김수환 추기경의 잠언집을 들고 일보 삼배를 하며 오열을 하시더군요. 취재진들이 몰린 것은 당연하구요. 분향을 마친 후 한겨레신문 기자와 간단하게 인터뷰를 했습니다. 여중학생이 교복을 입고 오니 좀 특이해보였던가 봅니다.

 

 

 

분향할 때는 사회자가 있어 헌화와 묵념 그리고 상주와의 인사순으로 진행을 하였습니다. 분향을 마친 후 바로 옆에 있는 대통령 사저에 가보았습니다. 목조 건물로 보이던데 작고 아담한 건물들이 4채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이더군요. 그리고 곁에 경호원들을 위한 건물도 함께 있는 것이 보이구요. 이를 두고 아방궁 운운한 사람들 아마 아방궁엔 못 가봤을 겁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갑자기 유명해진 부엉이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더 높은 절벽이 있던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 서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제 들었던 소식과는 달리 많이 차분해진 모습이며, 기자들도 취재에 열심이더군요. 그런데 다른 방송국이나 신문들은 다 보이던데, KBS와 조중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끝내 거기서 철수한 모양입니다. 날이 더워 조문객들 중 탈진 환자가 늘어간다고 해서인지 응급구호대가 많이 있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너무 수고하시더군요. 그리고 우리의 질서의식 또한 참으로 많이 성숙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이 깨끗하였고,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딸이 힘들다며 거기서 주는 국과 밥을 못먹겠다고 해서 상가집 음식을 먹지 못한 채 돌아왔습니다. 줄만 조금 서면 떡과 빵 그리고 우유를 무료로 나누어주었고, 생수는 군대군대 비치되어 언제든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4시 반쯤 봉하마을에서 나왔습니다. 갈 때는 올 때와는 달리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딸에게 물었습니다. 헌화한 소감이 어떠냐? 딸에게 물으니 잘 모르겠답니다. 그저 마음이 답답한게 안타깝다고 하네요. 딸이 제게 생전에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직접 만난 적은 없고 먼 발치에서 몇 뵈었다고 말하며,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5공말, 민주화 투쟁으로 우리의 대학 생활은 데모로 얼룩졌지만, 그래도 나의 후배들과 후세들에게 다시는 이런 세월을 안겨주지 않아도 된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다시 그 시절로 시간이 돌아가는 것을 보며 마음이 너무 슬프다. 미안하다, 그렇게 말을 맺었습니다. 또 눈물이 나네요.



"담배있나?" 이 말 때문인지 지금 분향소가 설치되기 전 마을회관 안에 설치된 분향소 향단에는 저렇게 담배를 피워드리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그 정감어린 목소리 이제는 제 마음에 담아 두렵니다.   

C-LEMON TV 박기자의 현장 취재였습니다. http://cafe.daum.net/ibs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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