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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60공정야전병원부대 한국전쟁 활약상

레몬박기자 2017. 10. 24. 07:53

한국전쟁당시 인도는 독립신생국이었다. 

인도는 6·25 당시 중립국을 표방했기에 전투부대를 파병하지는 않았지만, 

국제사회에 한국을 지원할 것을 권고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과 함께 의료지원단을 한국에 파병했다.


1950년 11월 346명의 인원으로 처음 부산항에 도착한 인도 60공정 야전병원 부대는

1954년 철수할 때까지 연인원 627명이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입원환자 2만 명과 외래 환자 19만 5천 명을 돌봤다. 

수술도 2천324회나 했다.




한국에 온 인도군은 당시 철천지원수라 할 수 있는 영국군과 한솥밥 먹으면서 평양까지 올라갔었다. 

그러다가 UN사령부에서 2개 팀으로 양분하라는 명령을 수용하고 한팀은 영국군과 남고 다른 한팀은 대구로 내려왔다. 

이렇게 60공정 야전병원은 대구 주둔 부대와 의정부 등 전선 지원부대로 나눠 활동하면서 소속 부대원도 2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했다. 




온난대 지역에서 온 인도군은 한국의 겨울에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이북 지역이 너무 추워서 약품보관에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다. 액체 마취제를 기화시켜서 쓰거나, 약품손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난로곁에 두기도 해야 했다. 더군다나 상처나 흉터, 의복등이 엉켜붙은 채 얼어버리는 등 최악의 상황을 겪었지만 그들은 이런 악조건을 이겨내며 자신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에 충실했다. 그리고 영국군과 함께 교전지역에서 부상위험이나 전사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임무 수행을 하였다.  




전선이 이동함에 따라 100여 명의 입원환자를 후방으로 옮기는 작전도 펼쳤으며 진료뿐 아니라 

한국 의료진과 협진하며 한국 학생들에게 의학도 가르쳤다.

대구에 내려온 팀은 열심히 활동하면서 한국인 마취전문의 30명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한국전 말기에는 아예 낙하산 공수를 훈련받은 의료팀이 본국에서 추가파병되었고, 

야전수술팀이 교전지역에서 전투병력과 함께 뛰며 의료활동을 펼쳤다. 



인도는 이후 1953년 7월 정전 협정에 체결되면서 구성된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의장국을 맡았으며 

1953년 9월∼1954년 4월 CFI 여단 6천130명을 파병해 정전 후 포로 감시 임무를 수행, 한국과 유엔의 전후 처리 업무를 도왔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나타나듯 종전 후 제3국행을 택한 포로를 일차적으로 받아들인 곳도 인도였다.


인도군참전기념비 부산 영도 태종대 들어서는 길목에 있는 '인도군 참전 기념비'



2015년 인도의 모다 총리가 방한하여, 국립현충원을 찾아 헌화하면서 인도가 한국 전쟁 당시 의료지원을 위해 파견한 60공정 야전병원 부대와 전쟁포로 송환을 위해 파견한 포로감시임무부대(CFI) 여단의 희생에 경의를 나타냈고, 이로 인도의료부대에 대한 재 조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 


 

by 레몬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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