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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북한의 명칭, 발해의 절 북한 칠보산 개심사 본문

신은미의 북한기행

부처님 오신 날 북한의 명칭, 발해의 절 북한 칠보산 개심사

레몬박기자 2023. 5. 29. 14:37

부처님 오신 날을 경축합니다! 
북한(조선)에서도 (소수로 추측되는) 불교 신자들은 

석가모니 탄신일을 ‘석탄절’ 또는 ‘열반절’이라고 부르며 이 날을 기념한다고 합니다. 

 

 

 

 

저는 북한을 여행하며 칠보산 개심사(함경북도 명천군), 묘향산 보현사(평안북도 향산군), 설봉산 석왕사(강원도 고산군), 구월산 월정사(황해도 안악군), 정방산 성불사(황해도 사리원), 그리고 김구 주석님께서 만주로 건너가시기 전 2년간 은신하셨던 평양시 용악산 법운암 등을 관람했습니다.

 

 

 

개심사 대웅전

 


그 중 가장 인상에 남았던 절은 북한의 국보유적 120호인 칠보산 개심사입니다. 

그 이유는 이 절이 발해시대의 사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은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2015, 네잎클로바)에 실은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개심사라는 발해 시대 절이라고 한다. '발해'라는 말이 나를 흥분케 한다. 발해가 우리 나라였던가! 발해의 유적이 한반도에도 있었단 말인가. 잊힌 우리의 제국 발해의 절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금껏 봐왔던 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까?


내가 발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고등학교 역사시간 때 교과서에서 읽은 얄팍한 지식이 전부다. '고구려의 장수 대조영이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의 무리를 이끌고 고구려의 고토에 세운 나라로, 한때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들을 만큼 강력한 국가였다'는 것만 기억난다.

 

 

개심사

 

 

 

그나마 역사 교과서에 언급돼 있어 막연히 우리의 고대국가 중 하나였다고만 알고 있었을 뿐, 발해가 문화적으로 어떤 나라였는지를 비롯해 발해가 우리의 역사 속에서 갖고 있는 위상과 그 의미에 대해서는 자세히 배운 기억이 없다. "지배계급이 고구려 사람들일 뿐 주민의 대부분이 말갈인들이었다"며 발해를 마치 남의 나라인 것처럼 다뤘던 역사 선생님의 접근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당연히 남쪽에는 유적마저 없으니 발해가 우리나라였다는 게 피부에 잘 와 닿지 않는다. 점차 발해는 우리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그 발해의 유적이 통째로 남아있다고 하니 어찌 흥분이 되지 않겠는가.

 

 

 

개심사 대웅전 현판

 

 

 

버스에서 내려 몇 발자국 옮기자 발해의 절 개심사가 눈에 들어왔다. 겉보기에는 남한에서 봐왔던 여타 절들과 다를 게 없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혹시라도 나는 이 절이 '내가 이제껏 봐 왔던 절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면 어쩌나' 하며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모습이었다면, 발해를 남의 나라인 것처럼 취급했던 역사 선생님의 말씀이 옳았다며 별다른 감흥없이 이 절을 휘익 둘러보고 나왔을 테니까.

 

 

 

 

 

물론 나는 불교 건축물에 대한 지식이 없다. 그러니 설사 남한에서 본 사찰들과 그 양식이 다르다고 해도 그 차이를 알 턱이 없을 터. 그저 내 눈에는 개심사가 조국의 땅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신라나 고려시대 절의 모습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나는 대웅전의 단청이며, 범종 등 구석구석 최대한 사진을 많이 찍으려고 노력했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우리의 다른 왕조들 절과 비교해 특별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대심사 종

 

 


중국인들은 우리가 태동했을지도 모를 요하가 흘러들어 가는 바다를 발해만(보하이만)이라고 불러왔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지도에도 그렇게 명명돼 있다. 그렇다면, 그 바다의 주인은 바로 우리라는 말 아닐까.

 

신라와 등을 지고 살다 홀로 최후를 맞았을 발해여, 외로워 마라. 그대의 8천만 후예들이 반도와 해외에 살고 있다.

그대의 후예들은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앞으로도 그대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2015, 네잎클로바, 185~191))

 

by 신은미 

 

* 위 글과 사진은 신은미 선생님께서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제가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 

사진과 글의 저작권은 신은미 선생님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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