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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논개의 정절이 살아숨쉬는 진주성의 풍경

레몬박기자 2012. 12. 15. 06:00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의 성지(聖地)이다. 본시 토성이던 것을 고려조 우왕 5년(1379)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석축하였다. 조선조 선조 24년(1591) 7월, 경상감사 김수(金수:1537∼1615)는 진주성을 수축하고 외성(外城)을 쌓았다.

 

 

 

 

 

 

 

 동 25년(1592) 10월, 임진왜란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1554∼1592)이 3,800명의 군사로서 3만 여명의 왜적을 물리쳐 진주성대첩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인 계사년(1593) 6월에는 전년의 패배를 설욕코자 10만 여명이 또 침략하여 끝내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는 비운을 겪었다.

 

 

 

 

 

 

 

 

동 37년(1604)에는 합포(合浦, 마산(馬山))의 우병영을 진주성으로 옮겨 온 이래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영이 있었고, 고종 32년(1895) 5월부터는 진주관찰부, 건양 원년(1896) 8월부터는 경상남도관찰사의 감영이 있었다. 그리하여 1925년까지는 경상남도의 도청이 있었다. 성의 둘레는 1.7㎞이다. 성내(城內)에는 촉석루·창열사·의기사·북장대·서장대·영남포정사·국립진주박물관·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촉석문·공북문·호국사 등이 있다.

 

 

 

 

 

 

진주성을 들어서면 입구에 위 사진처럼 논개 사당이 있다.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우리 백성들의 용기와 집념이 바로 논개라는 작은 여인의 용기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건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라를 위해 내어놓고, 그리고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게 내어놓는 숭고한 희생이 바로 애국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더 가지려고 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기를 쓰는 자들은 애국을 논할 자격이 없다.

 

 

 

 

 

 

백범 김구 선생님이 나의 소원은 내 나라의 독립이요, 조선의 자주 독립이라고 하였고, 자신은 그 나라의 문지기가 되기를 소원한다고 하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헌신인 것이다.

 

정성드려 찍은 사진들입니다.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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