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111
Total
4,725,440
관리 메뉴

공감과 파장

이분들이 진정한 엄마부대 송죽회와 대한애국부인회의 활동 본문

기억할뉴스

이분들이 진정한 엄마부대 송죽회와 대한애국부인회의 활동

레몬박기자의 레몬박기자 2016. 2. 16. 09:38

반응형

 이분들이 이땅의 진정한 엄마부대,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된 송죽회와 대한애국부인회

 

 

요즘 엄마부대를 자칭하며 숭고한 엄마의 이름을 더럽히는 단체가 있다. 엄마라는 이름을 사용할 자격이 없는 이들이 엄마의 이름을 자신들의 영리와 정치적인 목적으로 더럽히며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땅에 진정한 엄마부대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밑거름이 된 

송죽회와 그 후신인 대한애국부인회가 그것이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간부1922년 대국 감옥소에서 나온 뒤의 대한애국부인회의 간부들

 

 

송죽회는 1913년 평양 숭의 여학교 교사 김경희(金敬熙, 1887~1919)와 황에스더(黃愛德), 졸업생 안정석(安貞錫)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항일 비밀 결사였다. 교사와 여학생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송죽회는 교회를 통하여 여성 계몽 운동을 진행하였으며, 자금을 모아 해외에 보내거나 국내에 잠입한 독립운동가들에게 여비를 지급하는 등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숭의여학교 송죽회의 모체가 된 숭의여학교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던 송죽회는 1916년 기독교 계열의 여학교 선생들을 중심으로 지방 조직을 구축하며 확대되었다. 송죽회는 소나무[松]와 대나무[竹]를 합한 것으로 민족에 대한 곧은 절개를 의미하였다.


송죽회는 1910년대 내내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며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1919년 평양의 3⋅1 운동에서도 큰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이후 대한애국부인회의 전신이 되었다.

 

 

대한애국부인회대한애국부인회

 

 

송죽회의 활동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은 숭의 여학교 1회 졸업생이자 교사이며 초대 회장이었던 김경희이다. 김경희는 1916년 배일 혐의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아 폐병을 얻었다.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3⋅1 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넘어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합류하였다. 군자금 모집을 위해 다시 국내로 잠입하여 애국부인회를 결성하며 활발히 활동하다가 1920년 병사하였다.

 

이처럼 송죽회에 참여했던 여교사와 여학생들은 이후 한국 독립운동 과정에서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 활동하였다. 1910년대에 존재했던 다수의 비밀 결사 중에서 송죽회는 여교사와 여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대한애국부인회임원 대한애국부인회 임원들 , 최선화, 000, 김순애, 권기옥, 방순희

 

 

그리고 이런 송죽회의 활동은 대한애국부인회로 이어졌다.

 

3·1운동 직후 평양에서는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장로교파와 감리회파의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가 각각 조직되었다. 장로교파의 애국부인회는 1919년 6월 한영신 선생의 주도로 조직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단체를 후원하였으며, 감리회파의 애국부인회는 6월에 박승일·이성실·최순덕 등이 역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그리고 이를 임시정부가 '대한애국부인회'로 통합하였다. 이렇게 결성된 대한애국부인회의 본부는 평양에 두고 지방에 있는 부인회를 지회로 흡수하였다.

 

 

 

귄기옥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인 권기옥(權基玉, 1901.01.11.~1988.04.19.)은 최초의 여자비행사라는 타이틀 외에 독립운동가로도 유명하다.숭의여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그녀는 수학교사 박현숙의 권고로 당시 학교 내에 결성된 독립 비밀결사대 「송죽회」에 가입했고, 이후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초대 임원에는 총재 오신도, 회장 안정석·최순덕, 부회장 한영신 선생 등이 선임되었고, 회원은 100명이 조금 넘었으며, 회원과 동지를 통해 군자금 2,100원이 모였다. 일부 임원은 가지고 있던 금·은가락지를 희사하기도 했고, 이 자금은 두 차례에 걸쳐 김정목과 김순일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보내졌다. 하지만 1920년 10월 15일 금산지회장 송성겸 선생이 군자금을 나르던 도중 붙잡혀 관련인 100여 명이 검거됨으로써 조직이 붕괴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독립은 바로 이런 위대한 엄마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by 레몬박기자

(☞클릭) 레몬박기자의 오늘의 사진 바로가기

*이 글이 유익하셨다면 추천 하트 한 번 눌러주세요.

반응형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