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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파장
노벨평화상 엘리비젤 '중립은 가해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본문
엘리비젤( Elie Wiesel )은 루마니아계 유대인 작가로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밤 (Night)》이 있다.
엘리비젤은 루마니아 왕국 트란실바니아에 위치한 시게트에서 1남3여의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인도주의를 강조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신념을 중요히 생각해 그에게 토라를 공부하게 시켰다.
1940년 루마니아 정부는 나치 독일의 압박으로 헝가리 왕국에게 반강제적으로 트란실바니아를 할양했고
그곳에 살던 엘리 비젤의 가족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게토로 강제 이주당했다.
1944년 호르티 정권이 사실상 무너지고 친독일 파시스트당이 정권을 잡자
엘리를 비롯한 유대인들은 강제수용소로 이송되기 시작했다.
엘리는 가족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그곳에서 여동생과 어머니를 잃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프랑스에 구호시설로 보내졌다.
그의 수용소 시절을 바탕으로 첫 작품 《밤 (La Nuit)》을 썼다.
그 후 1955년 뉴욕으로 이주했고 1963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며 많은 홀로코스트 관련 작품을 냈고 198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문 중 중립에 관한 엘리 위젤의 연설
"우리는 가담해야 합니다. 중립은 가해자만 도울뿐 희생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침묵은 결과적으로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는 것입니다. 고통을 받는 사람 편이 아닙니다."
엘리 위젤이 말하는 중립은 방관,무관심과 같다고 보았다.
그리고 잊는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악몽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에게는 죽은 사람뿐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서도 증언할 의무가 있다.
잊는 다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모욕적이기도 하다."
2016년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자택에서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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