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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칼럼

어린이날 내가 40대로 다시 돌아가고픈 이유

레몬박기자 2021. 5. 5. 10:28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어린이날이기도 하고요.

저는 애가 둘입니다.

지금은 애들이 다 커서 어린이날 의미가 없지만 애들이 어렸을 때는 1년 중 가장 바쁜 날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30대 후반에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두 아이를 마흔 전후에 낳았지요.

큰애가 태어나고 1년 후에 외환위기가 터졌습니다.

작은애는 외환위기 1년 후에 태어났고요.

저는 당시 40대였는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외환위기로 많은 동료들이 구조조정을 당했지만 저는 운 좋게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 극심했습니다.

그분들이 하던 일을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했고 이전보다 일이 서너 배나 늘었으니까요.

 

 

 

 일에 지치다보니 가정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요일에도 애들하고 놀아주는 것은 고사하고 회사에 나가거나 아니면 집에서 잠만 잤습니다.

애들이 수면이라도 방해하면 짜증내기가 일쑤였습니다.

아내는 제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저를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그래서 애들도 도맡아 키우다시피 했습니다.

 

 

 

그날도 일요일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잠만 잤습니다.

꿈속에서 잘려나간 동료들이 이리저리 직장을 알아보러 다니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동료는 책을 팔러 다니고 어떤 동료는 공사판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우울증에 시달리다 죽은 동료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저는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꿈에서 깬 건 동료들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소리를 질렀기 때문입니다.

당신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순하기만 한 아내의 입에서 저런 거친 말이 나온다는 사실에 저는 놀랐습니다.

저는 짜증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일요일인데 좀 쉬자. 너무 힘들다.”

아내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작심한 듯 그동안 못했던 말을 쏟아냈습니다.

당신 애들하고 몇 번이나 놀아줬어요. 애들이 아빠 얼굴도 기억 못할까 무서워요. 하루 종일 놀아주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당신 정말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아빠 얼굴도 기억 못할 거라는 말에 저는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오늘 당신 왜 그래. 내가 힘들다고 했잖아.”

그러고는 베개를 집어던졌습니다.

물론 아내가 아닌 창문 쪽으로 던졌지요.

결혼하고 처음 있는 과격한 행동이었습니다.

아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동안 저를 바라보는데 눈에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아내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는 거실로 나갔습니다.

애들아, 아빠가 피곤하신 모양이다. 엄마하고 놀러 나가자.”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집이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거실로 나왔습니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처럼 소리 없이 집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하루만이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내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원망이 그리움으로 변해갔습니다.

애들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어느새 창가에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내가 돌아오는 길은 두 갈래였습니다.

하나는 놀이터 쪽에서 오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상가 쪽에서 올라오는 길입니다.

 

 

 

저는 상가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제발 이쪽으로 걸어오기를 바랐습니다.

누군가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걸어오고 있습니다.

어둠 때문에 누군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래 소리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사르르르 잠이 듭니다.

 

 

 

노래가 가까워집니다.

그들이 가로등 밑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림자가 두 개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셋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업고 한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었습니다.

저는 순간 눈물을 왈칵 쏟았습니다.

그리움의 눈물인지 설움의 눈물인지 모를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아내가 잠든 아이를 제게 넘깁니다.

저는 아이를 업고 걸어갔습니다.

이제 그림자가 세 개가 되었습니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따라 우리는 말없이 걸어갔습니다.

 

 

 

돌아보면 저에게는 40대가 너무 가혹했습니다.

오직 일이 전부였습니다.

잘리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하루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애들은 지금 20대입니다.

애들이 어떻게 컸는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애들은 저를 좋은 아빠, 따뜻한 아빠로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저는 40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애들과 맘껏 놀아주고 싶습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어린이날에 가장 큰 선물은 애들과 놀아주는 일입니다.

물건은 그때뿐이지만 추억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애들과 많이 놀아주어 추억을 많이 쌓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 좋은 아빠, 좋은 엄마로 기억될 것입니다.

즐거운 어린이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글은 딴지게시판 국어사전 님이 올린 글을 허락을 받아 퍼왔습니다. 

 

 

저의 40대도 참 가혹했습니다. 어쩌다보니 애가 넷.. 그저 일밖에 몰랐습니다. 

아내가 그러더군요. "당신 그러다 나중에 아이들에게 버림받는다." 

어느 날 모처럼 일찍 집에 들어와 자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본 막내가 이렇게 말합니다. 

"어 아빠다~ 엄마 그런데 아빠는 일요일에 들어오잖아, 오늘이 일요일이야?" 

그 말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울 아이들은 제가 평소에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일요일이 되면 들어와 집에서 자다가 나가는 그런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울 첫째가 그린 그림 중에 우리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그린 그림에 제가 없었습니다. 

"아빠는 어디갔어?" 

"아빠는 일하고 있잖아.. " 그러면서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눈빛으로 바랍니다.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40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내에게 그리고 아이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좋은 추억들을 가득 쌓아두었으면 좋겠습니다. 

 

by레몬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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