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이네로 말하라
- 행복한 맘스
- 뭘더의 로이터 닷컴
- 혜천의 바람흔적
- 피오나의 아름다운 이야기 모음.
- 세미예의 지키자 환경
- 소곤소곤비밀노트
- 탐진강의 함께 사는 세상 이야기
- 빨간來福의 통기타 바이러스
- 구름지기의 사진블로그
- 귀여운걸의 리뷰스토리
- 두자매 이야기
- 리우군의 today
-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 애버그린 스토리
- 루비의 정원
- 찰칵찰칵 사각사각... 커피 향
- 용포토스닷컴 : YongPhotoS.com
- 류희의 샌드아트
- yitzhak의 블로그
- ITstory
- 꼬마악당의 사진 속으로
- 내카메라로 닷컴
- 사진하나 추억둘
- 꿈꾸는 여행자
- 비츠로의 사진미학
- 골목 안 작은사진관
- 솜다리's gallery
- 마루토스/선배집
- 새로운 시작
- 생.활.사.진.가
- 내 앵글속에 그린 그림
- 골목 안 작은사진관
공감과 파장
이른 아침 찾아간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릉의 풍경 본문
경주 신라진평왕릉,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릉
아침 8시면 조금 이른 시간인가요? ㅎㅎ 하여간 그 시간에 조금 짬이 나서 경주로 직행했습니다 .오늘은 남들이 잘 찾지 않는 경주의 풍경, 특히 벚꽃 길 풍경을 담으리라 하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뭐 그런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매번 경주 보문단지로 가는 길에 보면 진평왕릉으로 가는 표지가 눈에 띄더군요. 언젠가 이 길로 한 번 가보리라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늘은 마음 먹고 그 쪽으로 길을 달렸습니다. 진평왕하면 지난 번 미설이 나오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의 아버지입니다. 아들이 없어 딸인 덕만공주를 왕위에 세우게 되죠. 제가 아는 진평왕에 대한 이야기는 그까지 입니다. 그래서 백과사전의 도움을 받아보았더니 좀 더 소상하게 진평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진과 함께 보는 진평왕의 이야기 하나씩 들려드리겠습니다.
늦가을에 찾아간 진평왕릉
조금은 을시년스러운 분위기
낙엽도 다 진 왕릉 적막하다
진평왕으로 가는 길 이정표를 보고 차를 운전하다 혹시 저긴가 하고 들른 곳이 다행히 진평왕릉이었습니다. 잘못하면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겠더군요.
이 왕릉을 진켜온 고목, 그 세월의 깊이를 짐작하다
같은 왕릉인데도 여긴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하지만 깔끔하게 잘 정리된 왕릉의 풍경
진평왕은 신라의 제26대 왕으로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백정(白淨). 아버지는 진흥왕의 태자인 동륜(銅輪)이며, 어머니는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딸인 만호부인 김씨(萬呼夫人金氏:또는 萬內夫人金氏)이다. 선비(先妃)는 복승갈문왕(福勝葛文王)의 딸인 마야부인 김씨(摩耶夫人金氏)이고, 후비(後妃)는 승만부인 손씨(僧滿夫人孫氏)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얼굴이 기이하고 신체가 장대했으며 의지가 굳고 식견이 명철했다고 한다.
딸을 잘 둔 아버지? 진평왕은 잘 몰라도 선덕여왕은 안다.
세월의 무게인가? 아버지의 연륜인가?
그 당시에는 추앙받는 왕이었지만 ..
세월은 그를 잊게 만들었고..
그의 흔적은 이 무덤과 역사책에 남겨진 한줄..
너무 아쉬워 마라..당신은 이름이라도 남겼지 않은가?
진평왕은 진흥왕에 이어 왕권을 성장시켜갔는데 이는 관제의 정비로 나타났다. 579년(진평왕 1) 이찬 노리부(弩里夫)를 상대등(上大等)으로 삼아 국정을 맡기고, 이듬해 이찬 후직(后稷)을 병부령(兵部令)에 임명하여 군사권을 장악하게 했다. 581년에는 관리의 인사를 담당하는 위화부(位和府)를 설치했다. 583년 선부서(船府署)를 설치하고 다음해 조부령(調府令)을 두어 공부(貢賦)에 관한 일과 승부령(乘府令)을 두어 수레에 관한 일을 맡겼으며, 586년에는 예부령(禮部令)을 두었다. 588년 노리부가 죽자 이찬 수을부(首乙夫)를 상대등으로 삼았다. 591년에 영객부령(領客府令)을 두었다. 그뒤 622년 궁정관부를 총괄하는 내성사신(內省私臣)을 설치했으며 623년 병부에 대감 2명, 624년 시위부(侍衛府)에 대감 6명을 두었다. 한편 불교 진흥에도 힘써 지명(智明)·원광(圓光)·담육(曇育) 등 중국에 가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온 이들을 지원하여 불사(佛事)뿐만 아니라 국사에도 참여하도록 해 호국불교의 확립에 기여했다.
그리고 이렇게 돌봐주는 이도 있고..
찾아와 주는 이도 있고..
함께 세월을 지내온 고목들도 있잖은가?
한편 재위기간 동안 삼국간의 항쟁이 격화되어 전쟁이 빈발했다. 602년 백제가 아막성(阿莫城)을 공격해와 이를 막았으며, 이듬해 고구려가 북한산성을 침입하자 직접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나가 싸웠다. 608년에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입해 8,000명을 잡아갔으며 우명산성(牛鳴山城)을 함락시켰다. 611년 백제군이 쳐들어와 가잠성(椵岑城)을 함락시켰으며, 616년에는 모산성(母山城)을 공격해왔다. 629년 대장군 김용춘(金龍春)·김서현(金舒玄)과 부장군 김유신(金庾信)으로 하여금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하도록 하여 크게 이겼다.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 속에서 나라를 지키려 밤을 새워 고민하는 당신의 마음
이제 이렇게 나무되어 뿌리에 깊이 박혀 신라를 지켰나니
너무 아쉬워 마라, 인생이란 그렇게 살다 가는 것이니..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외교관계를 강화하고 그들의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594년 수(隋) 문제로부터 상개부 낙랑군공 신라왕(上開府樂浪郡公新羅王)에 봉해졌으며, 608년 원광에게 수나라에 청병하는 글을 짓게 하고, 611년 양제에게 사신을 보내 군사원조의 허락을 받았다. 624년 당(唐) 고조로부터 주국 낙랑군공 신라왕(柱國樂浪郡公新羅王)에 봉해졌다. 632년에 죽자 한지(漢只)에 장사 지냈으며 당 태종으로부터 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에 추증되었다.
by 레몬박기자
저와 동맹블로그인 우리밀맘마의 "행복한 맘S" 바로가기 ☞클릭
*이 글이 유익하셨다면 추천 하트 한 번 눌러주세요.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껏 내가 본 벚꽃공원 중 여기가 최고였다 (11) | 2011.04.28 |
---|---|
한국적인 기념품이 가득한 경주민속공예촌전시관 (6) | 2011.04.27 |
산에서 본 에어먼지털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4) | 2011.04.19 |
행복한 가정을 세워나가는 진해 성광교회 풍경 (7) | 2011.04.18 |
양산 남부시장의 멋진 변신, 주말재래시장에서 쇼핑해야할 이유 (8) | 2011.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