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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파장
독립군 체포 고문을 일삼던 악질친일형사가 울산을 빛낸 인물이라니 본문
독립군을 체포하여 고문을 일삼던 악질 친일형사도 울산을 빛낸 인물이라니
한 때 울산은 친일매국노의 도시라는 오명으로 전 국민의 조롱을 받을 적이 있었다.
울산 정명 600년 기념사업으로 추진되는 '울산의 인물' 자료집에 친일파 그것도 독립군들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하여 이들을 고문한 악질 일제고등계 형사를 예비후보에 올렸기 때문이다. 바로 그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 노덕술(盧德術·1899~1968 일본식 이름: 松浦鴻(마쓰우라 히로))이다.
노덕술은 어떤 인물이기에 울산을 한순간에 친일매국노의 도시로 전락시켜 버린 것인가?
노덕술은 울산 장생포에서 태어났다.
빈천한 출신인 노덕술은 일제강점기 때 출세를 위해 일경에 투신하여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여 이들에게 혹독한 고문을 일삼다가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된 대표적 친일 고등계 형사다.
이병주가 쓴 <남로당>에는 "일제시대 고문왕으로 알려진 노덕술이란 경찰관이 있었는데 그의 손에 걸리기만 하면 어떤 애국지사도 배겨내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랬기에 노덕술은 친일 경찰로 독립운동가를 체포 고문한 공을 인정받아 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일제 경찰에서 조선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며, 일본 총독부에서 훈장까지 받았다.
광복 후에 그는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었지만
이승만 정권과 결탁하여 이승만의 비호를 받으면서 반공투사로 변신
이승만의 정적들을 빨갱이라고 잡아들여 예전의 그 무시무시한 고문기술을 선보이며,
이승만의 정적들을 제거하며, 승승장구하였다.
이후 그는 경찰권을 남용하였고, 마침내 뇌물 수뢰 사건으로 파면당하였다.
부산 제2육군범죄수사단 대장으로 재임 시,뇌물수뢰 혐의로 그 해 11월 육군중앙고등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징역 6개월을 언도받으면서 파면된 것이다.
이후 고향 울산으로 내려가 칩거 생활하면서 지내다가
1960년 7월 제5대 국회의원(민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재기를 노렸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1968년 4월,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병사했다.
영화 암살을 통해 재조명 받게된 김원봉 선생의 경우
광복 후 그 역시 노덕술에게 빨갱이로 체로되었고, 여지없이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스쯔키 스쯔기 니가 어떻게...란 대사가 바로 노덕술과 김원봉 일화이다.
노덕술이 김원봉 선생에게 고문을 가할 때 김원봉 선생은 이렇게 절규했다고 한다.
"내가 일제랑 싸울때도 이런 수모를 받았던 적은 없었다"
석방후 김원봉은 사흘을 통곡하다가 마침내 남한에는 더이상의 희망이 없다고 판단 월북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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