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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고 김영삼 전대통령의 발자취

레몬박기자 2015. 11. 2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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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큰별 고김영삼 전대통령의 발자취

 

고 김영삼(金泳三, 1927년 12월 20일 ~ 2015년 11월 22일)전대통령은

1954년 거제에서 만 26세의 나이로 제3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며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었다. 9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유신정권의 야당 지도자로서 민주당 원내총무, 민정당 대변인, 신민당 원내총무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1979년 10월에는 YH 무역 여공 농성 사건 이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을 주장하였다. 유신정권은 이 발언을 문제삼아 의원직 제명 파동을 일으켜 부마항쟁을 촉발했다. 1983년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을 기해 23일 동안 단식투쟁에 돌입했고, 6월 민주 항쟁 이후 통일민주당 총재로 민주화추진협의회을 구성해 민주진영을 구축했다. 1986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1천만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90년 그는 돌연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을 선언하여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추대되었고, 1993년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이로 32년만에 군사 정권의 마침표를 찍었고, 문민 정부시대를 열었다. 장면 내각 퇴진 이후 31년만의 문민정권이라는 것, 혹은 윤보선 퇴진 이후 30년만의 문민정권이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영삼은 문민정부의 성격을 "1993년 광주민중항쟁을 계승한 정부"로 규정하였으며,군사반란과 5.17 쿠데타 및 5.18 민주화 운동 진압의 책임을 물어 군사 정권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하였다. 또한 재임 초 국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했으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수사하여 처벌하였다. 

 

그는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차명 부정 계좌를 단속 및 처벌하였으며, 지방자치제를 전면 실시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명문화 등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의 일환으로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 철거하였고, 독도접안시설을 건설하였으며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고 호언하는 등 일본의 야욕에 당당한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초등학교로 개칭하였고,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쇠말뚝뽑기로 민족의 기틀을 세웠다. 예술인과 작가들의 반정부와 사회비판을 전면 허용하였고 군사 정권에 의해 수감된 박노해, 김남주, 마광수 등의 문학가를 석방하여 표현의 자유를 대폭 허용하였다.

 

 

 

 

 

 

 

재임초 그의 혁신적인 정책들이 실행되자 그의 지지율은 90퍼센트가 넘게 치솟았다. 그가 대선 때 받은 42%에 비해 두배가 넘는 것이었고, 택시기사들은 '요즘 살맛이 난다' 며 좋아했다. 팬클럽으로 "YS 사사모"가 있으며, 1980년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국제연감 1979년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3당 합당을 통한 정권 획득에 대한 비판과 재임기간 IMF 구제금융사건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일으킨 점, 재임 말년에 발생한 차남 김현철 등과 홍인길 등 측근들이 연루되 권력형 비리사건, IMF 구제금융사건 초래, 군사정권 관계자 처벌과 관련, 법치(法治)에 따른 원리·원칙보다는 지나치게 여론재판에 의존함으로써 기득권 내부의 저항을 야기시켰고, 형평성을 잃는다는 것은 그가 지우고 싶은 흑역사이기도 하다. 특히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고,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 것은 그의 씻을 수 없는 과오라 할 수 있다.  

 

 

 

 

 

 

 

그는 26세의 나이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고, 일생을 민주화운동의 헌신한 인물로 유신정권에 의해 국회의원직을 제명당한 최초의 국회의원이었으며,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이 나라 최고의 지도자였고 거목이였다.

 

 

 

 

 

 

2015년 11월 22일 0시 21분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생전 IMF 구제금융신청은 국민들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안겨다 주었지만, 그 역시 이 사건이 한으로 남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그 날에 그의 88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은 것이다.

 

 

 

 

 

참 수고 많았습니다. 

당신 때문에 한 때 정말 이 나라에서 살맛나게 살았습니다. 

그 땐 정말 속이 시원했습니다. 하나회 척결할 때 "놀랬재?" 라고 했던 당신의 그 말이 생생합니다. 

 

 

주님의 위로를 빕니다. 편히 쉬십시오. 

 

 

 





by 레몬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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