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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방문 끝에 들어간 비원, 지금은 수리중

레몬박기자 2009. 7. 9. 22:03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 오늘은 기필코 비원을 제 카메라에 담아야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창덕궁을 찾았습니다. 오늘로써 세 번째 방문입니다. 창덕궁 관람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모르고 두 번씩이나 헛걸음을 한 탓에 오늘은 시간을 지켜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매주 목요일은 그냥 일반 개방한다네요..제가 찾은 날이 6월25일 그 날이었고, 또한 목요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입장료가 허걱 15,000원이었습니다. 첨엔 천오백원인 줄 알았다가 다시 보니 일만 오천원이네요. 후덜덜... 제가 어이없어 하자, 매표원도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표정으로 표를 주더군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들어가야죠. 그런데 들어가서 보니 왜 요금이 그리 비싼지 알았습니다. 그 날, 목요일은 연경당에서 궁중음악회가 열리더군요. 그 공연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국악인들을 그렇게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는 참 드물고, 저같이 부산에 사는 사람은 그런 기회조차 잡기도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일단 비원을 찾았습니다. 사진으로 본 그 비원, 작은 연못에 정자가 있고, 그리고 아름다운 연꽃들이 그림처럼 펼쳐진 그 풍경을 떠올리며 빨리 그 풍경을 제 카메라에 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제 무지가 다시 빛을 발했습니다. 비원은 그 정자만 있는 작은 연못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창덕궁 후원을 가리키는 말이더군요.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퍼온 글입니다. 참고하시길 ..

창덕궁 후원의 명칭은 여러 가지로 불려졌는데 조선 초기부터 고종 때까지는 후원(後苑),상림원(上林苑), 내원(內苑), 북원(北苑), 금원(禁苑) 등으로 불리어졌습니다. 문헌상으로는 후원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비원이란 명칭은 고종실록 권 34, 광무 7년(1903) 기록에 처음 보입니다. 이 때 秘院은 창덕궁 관리를 위하여 세운 관청이름이었습니다. 순종실록 권3 융희 2년(1908) 4월 17조에 보면 순종이 비원(秘苑)에 나가 활을 쏘았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창덕궁 후원을 비원(秘苑)이라 부르게 된 것은 대개 1904년 무렵부터로 생각됩니다. 즉. 비원은 원래 창덕궁 후원을 관리하는 기관의 이름 비원(秘院)에서 시작되었으나 1904년부터 秘院을 秘苑으로도 썼던 것이며 이는 순종실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금원은 출입의 금지라는 제재조건을 내포하고 있고 후원은 뒤뜰이란 뜻이며 일반민가에도 적용되어 왕궁의 원유를 후원이라 부르는 것은 격에 맞지 않습니다. 후원이라는 명칭에 대해 문화재청에서는 여러 자료 수집을 통하여 신중하게 검토 중에 있습니다.
제가 가보고자 한 연꽃이 핀 연못을 부용지라고 하며, 그곳에 있는 정자를 부용정이라 하는군요. 대장금에서 왕과 대장금이 궁중 뜰을 거닐 던 곳으로 주목을 받았었고, 이전 정조왕이 그곳에서 자주 쉬셨다고 하더군요. 부용정 역시 정조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연꽃의 연못 제가 방문하니 공사중이더군요. 휴~ 그래도 연꽃 피는 계절에 제대로 찾아왔다고 쾌재를 불렀는데, 다시 한 번 더 와야겠습니다.













by 레몬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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