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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보물 아닌 것이 없는 속리산 법주사 유적 탐방기

레몬박기자 2019. 8. 20. 17:59


이번 여름 아내와 속리산 여행을 떠났다. 어떻게 된 건지 속리산은 매번 지나기만 하고 잠시 들러 그 풍경을 구경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마음을 다잡고 일단 법주사라도 다녀오고자 일정을 잡았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가 창건하였다.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천축(天竺, 印度)에 갔다가 백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절을 지을 터를 찾아다니는 길에 흰 노새가 지금의 법주사 터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고 울었다고 한다. 의신조사가 노새의 기이한 행적에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름다운 경치에 비범한 기운도 느껴져서 그곳에 절을 지은 후 절 이름을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 즉, 부처님의 법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법주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법주사_산문법주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법주사 산문, 호서제일가람이라는 현판의 걸려있다.


법주사_돌담길 산문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법주사 돌담길이 정겹게 내방객들을 맞이한다.


법주사_현수막 대부분의 절들이 그렇듯이 법주사 대문에도 호법신장인 사왕신이 있고, 그 문을 지나면 이런 현수막터널이 나온다. 이런 풍경은 처음이라 상당히 낯설었다.


법주사_철당간과 당간지주철당간과 당간지주이다. 당간지주는 고려때 처음 세워졌으며, 철당간은 구한말 대원군이 당백전을 주조할 때 수거되어 남아 있지 않다. 현재의 철당간은 순종때 복원되었던 것을 1970년대에 다시 복원한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많지 않은 철당간도 남아 있다. 당간은 걸개그림 같은 것을 걸어두는 목적으로 세워졌으며 솟대처럼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는 기능도 함께 있다. 멀리서 보고 사찰에 거의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법주사_금동미륵대불 법주사를 대표하는 금동미륵대불. 금동미륵대불은 오랜 내력이 있는 문화재는 아니지만 팔상전과 함께 법주사를 대표하는 불상이다. 이곳에는 통일신라 때 법주사를 크게 중창한 진표율사가 조성한 금동미륵대불이 있었는데,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불상을 몰수해가면서 없어졌다. 일제강점기 조각가 김복진이 시멘트로 거대불상을 조성하여 1986년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990년대에 낡은 불상을 해체하고 그 형태를 복사해서 청동불상을 조성하였으며, 2002년에 개금불사를 시작하면서 원래의 금동미륵불상의 모습을 다시 찾게 되었다. 최근에 조성한 불상이기는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조각가 김복진이 참여해서 조성한 의미있는 작품으로 현대 불교조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법주사_석연지법주사의 아주 오랜 유물 석연지(石蓮池, 국보 64호). 석연지는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천왕문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에 조성된 것으로 다른 사찰에서 없는 특이한 형태의 유물이다.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연꽃을 띄어 두어 극락세계를 표한하고 있다 한다.



석연지 오른 편에 천왕문이 있다. 이 천왕문은 법주사를 들어서면 나오는 현수막 덩굴을 지나면 나오는데

천왕문 뒤로 팔상전이 자리하고 있다. 


법주사_범종각보은 법주사 동종(報恩 法住寺 銅鍾)이 있는 범종각. 동종은 1636년(인조 13)에 조성된 범종이다. 2015년 3월 4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858호로 지정되었다.여긴 정말 보물보다 보물 아닌게 더 찾기 어려운 곳이다.


법주사는 대한민국의 사적 제50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를 비롯, 다양한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만 3점이고, 보물은 12점, 충북 유형문화재가 21점, 문화재자료 1점 등이다. 이외에도 법주사 자체가 사적 제503호로 지정되었으며, 법주사 일원은 명승 제61호이다. 또한 천연기념물도 2점이 있다.



범종각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이렇게 대웅보전이 나온다. 

대웅전 가는 길에 수련이 정렬되어 있고, 그 가운데 불을 밝히는 석등이 있다.


법주사_대웅보전 대웅보전은 보물 915호이다. 경주 황룡사 금당을 연상시키는 이 건물은 우리나라 불전 중 손꼽을 정도로 큰 규모로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으로 불린다.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인조 때(1624년) 새로 지은 것으로 건축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건물은 앞면 7칸 규모의 2층 건물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으며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불전 앞 돌계단은 국왕이 사용하는 계단인 답도처럼 가운데에 소맷돌이 있다. 내부에는 소조불좌상으로는 가장 큰 규모인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법주사_석조희견보살입상 대웅보전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특이한 조각상이 하나 보인다. 설명문을 보니 석조희견보살입상이라고 하는데, 처음 봤을 때는 웬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가는 상인줄 알았다. 그런데 향로를 받쳐든 것이라고 한다. 신라시대인 AD720년경에 만들어진 것.



법주사_팔상전 보은 법주사를 대표하는 건물인 팔상전(報恩 法住寺 捌相殿).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5층탑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고식(古式) 목조탑으로 중요하다.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렸으나 1624년(인조 2년)에 사명대사가 재건한 것으로 전하며, 탑파 관념이 없던 시대의 사상을 잘 반영하는 탑파 건물이다.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 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하나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법주사_ 마애여래의좌상 마애여래의좌상 보물 216호이다. 법주사 바깥쪽에 있는 높이 6m에 이르는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이다. 고려초에 조성된 불상으로 통일신라말 혼란기를 거쳐면 크게 쇠퇴한 불상조각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특이한 형태의 불상으로 연꽃위에 걸터 앉아 이씨고, 발을 큼직한 연꽃잎 위에 올려 놓고 있다. 조각수법이 섬세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조형미도 떨어지는 편이다. 전체적으로 힘이 넘치는 모습으로 고려초기 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법주사_사리탑고려 공민왕이 법주사에 행차했을 때, 통도사에 있는 석가모니의 사리 가운데 일부를 이 곳에 옮겨오도록 하여 세워놓은 사리탑이다.


법주사는 통도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한다. 

통도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셨기에 불교의 성지 중의 성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런데 그 진신사리의 일부를 왕명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왔으니 법주사의 중요성 또한 짐작할 수 있다. 

법주사는 통도사에 비하면 그리 큰 절은 아니지만 그 안에 있는 것 작은 석등조차도 보물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유물로 가득차 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경내도 거닐고 또 그 안에 있는 우리의 유물들을 세세하게 살펴본다면 역사체험현장으로 더할 나위 없을 듯하다. 


 

by 레몬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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