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공감과 파장

손님의 미소가 주방장에게는 훈장 본문

사진칼럼

손님의 미소가 주방장에게는 훈장

레몬박기자의 레몬박기자 2021. 5. 26. 09:33

반응형

회칼 쓰는 남자 이야기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법정스님이 문득 생각납니다.

그분이 한 말 때문입니다.

운수(雲水)처럼 살라.

구름처럼 물처럼 자유롭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기대해봅니다.

 

 

자갈치시장 @레몬박기자 

 

 

오늘의 소재는 회칼 쓰는 사나이입니다.

무섭지요.

궁금하신 분은 뒤에서부터 읽으셔도 됩니다.

 

낮잠을 너무 많이 잤나봅니다.

일어나니 오후 530분입니다.

2시간 가까이 잤습니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거실에서 빨래를 개고 있던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무슨 낮잠을 그리 오래 자세요.”

그러네.”

저는 갈증을 느껴 물을 벌컥벌컥 마십니다.

점심 때 쫄면을 먹었는데 양념이 짰던 모양입니다.

 

 

자갈치축제 조개구이 @레몬박기자 

 

쫄면은 매운 게 당연합니다.

그 맛으로 먹기도 하고요.

그런데 고추장을 너무 많이 넣었나봅니다.

콩나물, 오이, 양파, 당근 등이 들어갔는데도 고추장의 매운맛을 상쇄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맛은 아주 좋습니다.

아내가 삶은 달걀을 쫄면 위에 얹어줍니다.

저는 냉큼 먹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달걀노른자는 매운맛을 없애주기 때문에 마지막에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처음에 먹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저를 책망합니다.

허허 참 사람도 맛있게만 먹으면 되지 무슨 순서를 따지누. 손님의 미소는 주방장에게는 훈장이라는 말도 있잖아. 당신 음식 솜씨가 너무 훌륭해서 그런 것이니 오해 말라고.”

아내가 마지못해 웃는 시늉을 해보입니다.

 

자갈치시장 장어구이 @레몬박기자 

 

저는 마스크를 씁니다.

어디 나가시게요?”

점심 먹은 게 소화가 덜 된 것 같아서 시장이나 한 바퀴 돌려고.”

냄비뚜껑 좀 열어놓고 가세요.”

아내가 가스레인지 위에 있는 냄비를 가리킵니다.

저는 뚜껑을 열고는 놀라서 묻습니다.

웬 장어야?”

당신 기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장어국을 끓여보려고요.”

고소한데. 기대가 되는 걸.”

너무 늦지 마요.”

식사시간 맞춰 들어올게.”

저는 시장에 들어섭니다.

철물점, 돼지국밥집, 정육점, 반찬가게, 횟집 등이 줄지어 있습니다.

저는 횟집 앞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주인은 회를 썰어서 팔기도 하는데 기다리는 손님이 없습니다.

제가 전에 살던 곳의 횟집과는 사뭇 다릅니다.

 

 

자갈치시장 문어찜 @레몬박기자 

 

그곳에는 횟집이 세 곳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한곳에만 몰렸습니다.

저는 사람 많은 집에 줄을 섰습니다.

주인 여자가 주문을 받습니다.

저는 전어 1을 시켰습니다.

주인 여자가 수족관에서 전어를 꺼내고는 저울에 달았습니다.

부족한지 한 마리를 더 꺼냈습니다.

모두 여섯 마리인데 그것을 도마 위에 올렸습니다.

전어가 파닥거렸습니다.

여자가 손으로 전어의 목을 비틀었습니다.

금방 전어가 조용해졌습니다.

여자가 칼을 들더니 전어의 머리를 탁탁 잘랐습니다.

비늘을 제거하고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냅니다.

모든 동작이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여자가 전어를 수건으로 닦은 다음 그것을 싸서 꾹꾹 눌렀습니다.

이제 물기가 다 빠졌습니다.

여자는 전어를 회 써는 남자에게 넘겼습니다.

 

 

전어 @레몬박기자 

 

 

남자가 전어를 썰기 시작했습니다.

손놀림이 아주 빠른데 칼이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신기했습니다.

회 써는 소리가 리듬을 탑니다.

, , , 

남자는 도마에 거의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입심도 좋습니다.

 

"횟집은 손님이 많은 곳에 가야합니다. 바닷고기란 게 그래요. 수족관에서 며칠만 있으면 흐물흐물해져요. 손님이 없는 횟집에 가면 어떤지 아세요. 수족관에서 오래된 고기부터 내놓는 거예요. 그런 고기가 어디 싱싱하겠어요."

 

그때 전화가 왔습니다.

남자는 전화기를 오른쪽 어깨 위에 얹은 다음 귀밑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아주 힘든 자세였습니다.

그런데도 회 써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입 따로 손 따로 움직였지만 실수 같은 건 없었습니다.

전화가 끝났습니다.

 

 

자갈치시장 곰장어요리 @레몬박기자 

 

하던 말을 다시 이어갑니다.

 

"회라는 게 그래요. 찬 습성을 가졌어요. 조금만 온기가 있어도 금방 흐물흐물해져요. 일식(日食) 집에 한번 가보세요. 여자 조리사가 없어요. 여자 손은 남자 손보다 따뜻하기 때문이지요. 남자들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 횟집에서 조리사로 써주지 않아요."

 

저는 남자의 손을 바라보았습니다.

손이 솥뚜껑 만했습니다.

저 손에 과연 열이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손에 팔뚝에 칼자국이 여러 군데 나 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과거에 뒷골목 생활을 했는데 아내를 만나고부터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성당에도 열심히 다니는데 이웃의 굳은 일은 도맡아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곳으로 이사 올 때 가장 아쉬운 게 하나 있었는데

그가 썬 회를 다시는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갈치시장 생선구이 @레몬박기자 

 

 

저는 집에 돌아와서 회칼 쓰는 사나이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그를 그렇게 불렀거든요.

그분 성당신도회 부회장이에요. 사람 좋다고 칭찬이 자자해요.”

아내는 그 집 부인과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내는 모양입니다.

아내가 국자에 장어국물을 떠서는 맛을 보라고 합니다.

어때요?”

아주 고소한데. 맛있어.”

그런데 왜 웃지 않지요?”

웃다니?”

손님의 미소가 주방장에게는 훈장이라고 했잖아요.”

하하, 알았어.”

저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이만하면 훈장을 주고도 남지?”

고마워요. 훈장을 주셔서.”

아내가 살포시 웃습니다.

저도 따라 웃었습니다.

가스레인지 위에서는 장어국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습니다.

 

 

자갈치시장 활어센터입구 @레몬박기자 

 

오늘은 날씨가 흐립니다.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주문을 걸어봅니다.

정말 좋은 일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by 국어사전 (이 글은 딴지일보게시판에 닉네임 '국어사전'님이 쓴 글을 허락을 받아 게시합니다. )

반응형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