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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건네 준 옛 직장 명찰 그리고 상사병 본문

사진칼럼

아내가 건네 준 옛 직장 명찰 그리고 상사병

레몬박기자 2021. 6. 7. 18:13

이른 아침부터 밖이 소란스럽습니다.
일주일 한번 있는 쓰레기분리수거 하는 날이기 때문이지요.
아내도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봄이고 해서 오래되고 낡은 것들을 버리려 하나 봅니다.

아내가 하던 일을 중단하고 내게 오더니 뭔가를 내밉니다.
책상에서 책을 보고 있던 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뭐냐고 묻습니다.
아내가 버려도 될지 다시 묻습니다.
그제야 아내가 내민 것을 봅니다.

 

제가 직장에 다닐 때 왼쪽 가슴에 달고 다니던 플라스틱 명찰입니다.
반은 파랑색이고 반은 흰색입니다.
파랑색 바탕 위에 직장 이름이 적혀 있고 흰색 바탕에는 제 이름 석자가 적혀 있습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상사화 @레몬박기자 

 


어느 철학자가 인생을 3등분했는데 준비기, 활동기, 안식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준비기는 태어나서 스물아홉 살까지이고, 활동기는 서른 살에서 예순 살까지이고, 안식기는 예순한 살에서부터 죽을 때까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명이 많이 늘어 안식기를 일흔 살에서 죽을 때까지로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명찰은 제게 많은 소회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서른 살 활동기에 입사해서 예순 살 정년까지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에 저는 감사합니다.
전적으로 직원여러분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화단에 핀 상사화@레몬박기자 

 

사실 저는 조금 특이한 직원이었습니다.
너무 진보적이어서 제 성을 따 박진보라는 별명이 불을 정도였으니까요.
회사의 근로개선을 위해 앞장서다보니 상사의 눈 밖에 나서 두차례 승진에서 누락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행복한 직장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퇴직하고 얼마간은 회사가 너무 그리워서 상사병을 앓기도 했습니다.
보다 못해 아내가 그러더군요.
그리 못 잊겠으면 한 번 다녀오라고요.
그런데 선뜻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후배들을 만나면 그 또한 나이든 사람의 주책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지요.

 

 

우리끼리 상사화 @레몬박기자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버스를 타고 다녀오는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현직에 있을 때 101번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버스를 타고 회사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버스에 오르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한 정거장씩 지날 때마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데 회사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쿵쾅댑니다.
마지막 한 정거장을 남겨두고는 회사 쪽으로 고개를 길게 내밀었습니다.
드디어 안내방송이 흘러나옵니다.
다음은 000입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창가에 바싹 붙었습니다.
버스가 회사를 지나쳐갑니다.
먼발치에서 보는 회사였지만 제 눈에는 물기가 촉촉이 서려 있습니다.
그러다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왁자지끌 상사화@레몬박기자 


그날 저는 101번 시내버스 안에서 30년간 나를 지켜주고 내 가족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회사를 향해 감사의 마음으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퇴직한지 3년이 다 되어갑니다.
지금은 회사에 대한 지독한 상사병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저는 지금 안식기에 해당합니다.
곱게 늙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매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아내가 분리한 쓰레기 봉투를 양손에 들고 분리수거장을 향합니다.

 

 

웃고 있는 상사화@레몬박기자 

 

저는 하늘을 쳐다봅니다.

파랗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듭니다.
항상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긴 하지만요.
오늘도 행운이 가득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by 국어사전 (이 글은 딴지일보게시판에 닉네임 '국어사전'님이 쓴 글을 허락을 받아 게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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