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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사연

반지하와 옥탑방에서 보낸 신혼의 추억

레몬박기자 2009. 12. 19. 05:00


결혼한 지 벌써 17년이 지났군요. 참 세월 빠릅니다.
결혼해서 신혼 살림을 경기도 부천에서 차렸습니다.

반지하 1층에 방한칸 간이 부엌 그리고 화장실이 달린 일종의 원룸이었지요.
그 땐 참 고생스러웠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삼년이 지난 후에 저는 서울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옥탑방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다행히 제가 입주한 건물이 좀 크기 때문에 옥상이 널찍해서 여태껏 살아온 집 중 가장 넓은 마당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옥탑방이라는 거, 정말 힘들더군요. 도리어 살기는 반지하가 낫습니다.
통풍만 잘되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죠. 하지만 옥탑방은 겨울엔 바깥만큼 춤고, 여름엔 더 더웠습니다.
특히 열대야가 있는 날엔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제 기억으로 한 밤 중의 방 온도가 36도를 웃돌았습니다.





겨울에는 어땠을까요? 일단 우풍이 얼마나 심한지,
옥탑방이 조금 싸다는 이유로 들어왔지만 도리어 연료비가 더 드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방열 방음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철물점에서 두께가 두꺼운 스치로폴을 안밖으로 대고 비닐을 그 위에 덧씌워도 도대체 이 놈의 바람은 어디서 스며오는지..
누워있으면 바닥은 따뜻한데 코는 얼어붙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새벽기도회를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눈이 내리고 있더군요.
저는 부산 출신이라 눈을 보면 그리 좋을 수가 없습니다. 서울 생활을 꽤 오래 했는데도 불구하고 눈이 오면 좋더군요.
내리는 눈발을 느끼며, 가로등이 비추는 골목길을 걸으며 교회로 향했습니다.
마치 제가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으로 가는 내내 행복했고, 또 돌아오는 걸음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요, 계단을 올라 집에 올라와보니, 우리집 정원이 하얀 눈에 덮여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으로 덮힌 새하얀 마당을 우리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제 세 돌이 지난 우리 이쁜 딸을 깨워 창가에 세웠더니

"야, 눈이다 눈.. 아빠 나 옷갈아 입혀줘~ "

어찌나 성화를 부리는지, 양말을 신기고 장갑을 끼우고, 그리고 부츠를 신겨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우리 아이, 그 새하얀 눈 밭을 뛰어갑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자기가 남긴 발자국이 보이네요.
신기한 듯 그 발자국에 다시 발을 대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자신의 흔적을 따라갑니다.
그 때 디카가 있었더라면.. 아쉽게도 그 날의 추억이 담긴 사진은 남아있질 않네요.
저와 아내도 우리 아이 충분히 눈을 즐겼다 싶을 때에 마당에 나가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었습니다.







우리 딸 지금은 낼 모레면 고등학생이 되는데, 지금도 간혹 그 때 일을 기억합니다. 
그 새하얀 눈밭, 그 추억을 떠올리며 서울로 이사가자고 때론 떼를 쓰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부산엔 눈이 잘 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눈이 더 기다려지네요.






오늘 만덕 터널 위 산책로를 걷다 수많은 옥탑방을 보면서, 옛날 그 신혼의 때를 추억해봅니다.
그 땐 그리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도리어 제 추억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기억은 더 풍성하게 느껴지네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7장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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