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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전우용 재벌개혁은 정의를 넘어 국가의 존립 문제

레몬박기자 2018. 4. 19. 22:06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이 블랙하우스에 출연해서 재벌에 대해 설명한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블랙하우스에 3주 연속 출연하는 게 부담스럽긴 했으나, '한국 기업 성립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역사학자로서 이 문제에 관해서는 발언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언론들이 ‘부동산 재벌 트럼프’나 ‘언론 재벌 허스트’ 같은 말을 함부로 쓰는 탓에 미국이나 유럽에도 ‘재벌’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지어 재벌이 단지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을 뜻하는 말인 줄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재벌은 오직 한국에만 있는 '특별한 가족'입니다.

 

웹스터 사전은 재벌(財閥)의 한국어 발음 chaebol을 ‘가족이 지배하는 한국의 산업 복합체’로, 일본어 발음 zaibatsu를 ‘일본의 강력한 금융-산업 복합체’로 정의합니다. 그런데 이 정의는 사실 본뜻과 상당히 어긋납니다. 일본에서 ‘자이바츠’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군벌(軍閥)이 발호할 무렵에 등장합니다. 군벌은 ‘막강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정치적 특권을 행사하는 군인 집단’이라는 뜻이었고, 재벌은 ‘막대한 재산을 배경으로 정치적 특권을 행사하는 재력가 집단’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자이바츠는 ‘기업 집단’이 아니라 ‘재력가 집단’이라는 점에서 콘체른과 달랐습니다. 일본의 자이바츠는 막부 시대 쇼군이나 다이묘들을 상대로 장사하던 정상배(政商輩)들이 메이지유신 과정에서 국가권력과 결탁하여 급성장함으로써 형성됐습니다. 군국주의 시대 일본에서 자이바츠는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정책 방향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맥아더 사령부가 일본 점령 직후 자이바츠 해체에 착수한 것도, 이들이 전쟁범죄의 주범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흔히 ‘식민지 잔재’를 운위하지만, 그 핵심 중의 핵심이 재벌인 줄은 잘 모릅니다. 한국의 초기 재벌들은 일본의 자이바츠처럼 되려고 했고, 일본의 자이바츠에게 성공 방법을 배웠습니다. 예를 들어 1950년대 한국 최대 재벌로 꼽혔던 태창은 이승만이 귀국한 직후부터 4.19로 물러날 때까지 '생활비'라는 명목으로 거액의 자금을 상납하고 그 댓가로 원조물자 배정 등에서 정권으로부터 엄청난 특혜를 제공받았습니다. 


게다가 재벌은 식민지 잔재일 뿐 아니라 '중세 잔재'이기도 합니다. 국가권력과 결탁하여 성장하고 국가 정책에 비정상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력가 집단이라는 점에서 식민지 잔재이고, 그 ‘재력가 집단’이 순수하게 ‘가족’만으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중세 잔재입니다. 


이 지구상에 한민족만큼 혈통과 세습에 집착하는 민족은 또 없을 겁니다. 북한의 조선노동당도, 한국의 재벌도, 심지어 한국 교회도, 혈통에 따른 세습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서로 별 관계가 없는 거대 기업들을 가족 구성원들이 나누어 맡아 경영하고 그 경영권을 세습하면서 국가의 모든 영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국의 특권 가족(들)'이 재벌의 올바른 사전적 정의입니다.



 


 사유재산을 세습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들 하지만, 문제는 ‘재산의 세습’이 아니라 ‘경영권의 세습’입니다. 주식회사는 개인기업이나 가족기업이 아닙니다. 한국의 거대 주식회사들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은 10% 미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경영실패에 책임을 지는 법이 없습니다. 한진해운 사태에서 보듯, 회사를 회생 불능의 상태에 빠뜨리기 전에는 물러나지 않습니다. 회사가 망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남습니다. 더구나 재벌의 ‘사유재산’조차 온전히 그들의 노력으로 축적된 게 아닙니다. 귀속재산 특혜 불하, 원조 물자 특혜 배정, 저리 자금 특혜 융자, 공장 용지 특혜 분양 등 공공으로부터 온갖 특혜를 받아 축적된 겁니다. 하지만 이 ‘가족들’은 ‘공공의 기여분’까지 몽땅 ‘사유화’하고는 기업을 '세습 영지'처럼 취급합니다. 작금에 불거진 재벌 2세 3세들의 중세 특권 귀족 같은 작태를 보면, 저들에겐 '민주주의 시대'에 기업을 운영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다음으로 재벌과 ‘재벌체제’는 구분해야 합니다. ‘재벌체제’란 재벌이 ‘정치권력과 결탁한 경제권력’을 넘어, 사회 문화 교육 예술 언론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체제입니다. 오늘날의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입니다. 이 거대한 경제규모를 단 10여 개의 가족이 좌우할 뿐 아니라, 그들과 혼맥이나 그 밖의 ‘사적 연고’로 연결된 사람들이 사실상 사회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고려 말의 권문세족이나 조선 말의 ‘경화벌열(京華閥閱)’도 이 정도의 지배력을 갖지는 못 했습니다.

 

재벌의 본질은 ‘하나의 가족’일 뿐입니다. 재벌 기업이 만든 아파트에서 살고, 재벌 기업이 만든 전자제품을 쓰며, 재벌 기업이 만든 옷을 입고, 재벌 기업이 만든 음식을 먹으며, 재벌 기업이 만든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사는 탓에 재벌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재벌은 그냥 '그들 가족'입니다. 





5천만 명의 운명을 몇 개 가족에게 맡기는 재벌체제, 재벌 가족의 사익을 공익과 혼동하는 체제는 결코 안정적일 수 없습니다. 소수 가족 지배체제야말로, 언제나 국가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협하는 주범이었습니다. 재벌개혁은 이미 사회정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 존립의 문제입니다.


 

by 레몬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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