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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파장
창덕궁 함양문에서 창경궁 홍화문으로 나오는 궁궐 여행 본문
창덕궁 여행을 마치고 이제 바로 곁에 있는 창경궁으로 가자.
창경궁은 창덕궁과 담. 하나를 두고 이웃해 있고
두 궁을 연결하는 문이 있다.
오후 5시까지는 청덕궁 후원에서 표를 사 바로 이 문으로 창경궁에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추가 입장료는 단돈 천원
이곳 함양문을 통해 들어서면 바로 창경궁이다.
창경궁은 성종 14년(1483)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추존왕)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터에 창건한 궁이다.
수강궁이란 세종 즉위년 1418년,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위해서 마련한 궁이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연결되어 동궐이라는 하나의 궁역을 형성하면서,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공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성종대 창건된 창경궁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고, 광해군 8년(1616)에 재건되었다.
그러나 인조2년(1624) 이괄의 난과 순조30년(1830) 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이 소실되었다.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며,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왕궁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앙부일구(仰釜日晷)[A]는 1434년 조선 세종대왕 16년 이후로 제작·사용된 해시계로,
과학·역사·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 8월 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845호로 지정되었다.
앙부일구는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초기의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이때 제작된 앙부일구는 남아 있지 않아 18세기에 제작된 것을 보물로 지정하였다.
풍기대와 앙구일구가 있는 곳을 지나면 성종대왕 태실이 있다.
성종대왕태실은 여러 단계를 거쳐 씻어 성종의 태와 태반을 태항아리에 넣어 봉안한 것이다.
창경궁에는 아주 큰 연못이 하나 있다. 바로 춘당지이다.
춘당지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아래 큰 연못은 원래 내농포로
국왕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곳이다.
1909년 일본인들이 이곳에 연못을 만들었고, 1986년에 우리 전통 양식에 가깝게 재종선한 것이다.
사실은 윗쪽 작은 연못이 춘당지인데, 지금은 통틀어 춘당지라고 부르고 있다.
1909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대온실은 창덕궁에 거처하는 순종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인들이 창덕궁에 인접한 창경궁내에 동물원과 함께 지었다.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하여 완성하였으며,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싼 서양식 온실이다.
준공 당시에는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다.
1986년 창경궁 복원 이후에는 국내 자생 식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2004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창경궁에는 여러 전각들이 있다.
문정전, 숭문당, 경춘전, 환경전, 통명전, 양화당이 그것이다.
내전 가장 깊숙한 곳에 남향으로 위치한 통명전은 ‘통달하여 밝다’라는 뜻이며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으뜸 전각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월대 위에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으며,
연회나 의례를 열 수 있는 넓은 마당에는 얇고 넙적한 박석을 깔았다.
경춘전의 경춘(景春)은 '햇볕 따뜻한 봄'이라는 뜻이다.
1484년(성종 15) 창건 당시에 건립된 침전 건물로 주로 왕대비, 왕비 또는 세자빈 등이 거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이괄의 난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다가, 1834년(순조 34)에 중건되었다.
남향인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며, 영춘헌은 ‘봄을 맞는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집복헌은 영춘헌의 서쪽 방향에 5칸으로 연결된 서행각이다.
양화당과 영춘헌 사이에 있는 너럭바위
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정조가 혜경궁홍씨를 위해 1777년에 지은 자경전이 있다.
함인정의 함인(涵仁)은 ‘인을 간직한다’라는 뜻이다.
함인정은 국왕이 신하들을 만나고 경연을 하는 곳으로 이용하였으며,
영조가 문·무과에 합격한 사람들을 이곳에서 접견하기도 하였다.
함인정은 건물 사방이 벽체 없이 시원하게 개방된 모습인데,
19세기 궁궐기록화인 <동궐도> 에는 지금과 달리 삼면이 막혀 있다.
숭문당은 글자 그대로 문(文)을 숭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왕의 경연(經筵)을 벌이던 곳으로,
특히 영조는 성균관 유생이나 종친들을 접견하고, 유생들을 시험했다.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 전각인 정전(正殿)으로, 명정(明政)이란 ‘정사를 밝힌다’라는 뜻이다.
국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장소이다.
문정전은 명정전과 달리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임금이 창경궁에 오셨을 때 신하들과 정치를 의논하고 업무를 보던 편전의 용도
하지만 국상이 있을 때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창경궁은 일제가 이곳을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조성하면서 그 원형을 가장 많이 훼손한 곳이다.
그래도 이곳은 조선왕조의 숨결이 내려져 있는곳, 궁궐의 정원을 함께 거닐어 보자.
한참을 거닐다 보니 저기 창경궁 정문 홍화문이 보인다.
아쉽게도 화각이 좁아서 홍화문 정면을 다 담지 못했다.
다음에 광각렌즈를 달고 다시 찍어야겠다.
드디어 창경궁 정문 홍화문을 통해 궁궐을 빠져나왔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통해 창덕궁을 둘러보면서 창덕궁 후원에 이르렀고
창덕궁 후원에 있는 함양문을 통해 창경궁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창경궁을 다 둘러본 후 이제 홍화문을 통해 창경궁을 나왔다.
생각보다 아주 긴 여정, 오백년 조선왕조의 숨결을 깊이 느낀 시간이었다.
by 레몬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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